특별한아리랑 뉴스목록
-
아리랑 칼럼: 다시 읽는 'Song of Ariran (1)목록 메일 프린트 스크랩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찬숙/아리랑학회 연구이사 금년은 아리랑에 관한 책으로 매우 의미있는 ‘Song of Arirang’이 간행된지 80년을 맞는 해이다. 아리랑 역사의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아리랑’을 표제로 한 책은 10여종에 이른다. 1945년까지의 상황으로는 1930년대 초 창가집류가 5종으로 ‘映畵名曲아리랑唱歌’(1930), ‘아리랑民謠集’(1930), ‘現代映畵아리랑唱歌集’(1931), ‘아리랑民謠集’(1931), ‘현대유행신아리랑창가(’1932)가 있고, 1935년 이후 일본어 표기 의 ‘朝鮮民謠アリラン’(1935년 김지연)과 소설 ‘ありらん峠’(1938년 김문집)가 있다. 그리고 영어로 쓰여진 ‘Song of Arirang’이 있다. 이중에 마지막의 영어로 쓰여진 것은 1941년 의외의 미국에서, 의외의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스(Nym Wales. 본명:Helen Foster Snow, 1907~1997)가 조선인 김상의 생애를 전기체로 쓴 책이다. 창가책 5종은 (사)아리랑연합회 소장자료로 서지사항이 밝혀졌고, 일본어 표기 중 김지연의 ‘朝鮮民謠アリラン’에 대해서는 필자의 연구논문이 있고, 김문집의 단편집 ‘ありらん峠’ 역시 최근 연구논문(동의대 신용주)이 발표되어있다. 그러나 ‘Song of Arirang’에 대해서는 그 유명세에 비해 서평에 머무르는 듯하다. 필자는 학부 졸업논문으로 ‘Song of Arirang’ 소재 아리랑 연구‘를 제출하면서 이 책을 탐독했다. 2001년 스터디 모임 ‘아리랑아카데미’에서 백선기(소설가 김팔봉의 서랑)선생과 김연갑선생으로부터 님 웨일즈 방문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 주인공 김산(1905~1938)의 아들 고영광 선생을 초청, 부친의 건국훈장 애국장 서훈식 참석을 도운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그동안 책을 통해 풀지 못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예컨대 저자 님 웨일즈가 노벨상에 두 번(1981~2)이나 노미네이트(nominate) 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Song of Arirang'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인지의 여부였다. 결과는 중국 속의 조선인 항일투쟁가들을 기록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고발했다는 평가로 문학상이 아닌 평화상의 후보지명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님 웨일즈는 김산에 대해 단순한 취재원이었을 뿐인가라는 의문이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갖고 있는 의문이었을 것인데, 직접 만난 두 분과 고영광선생의 증언으로는 3개월 간 22회의 ‘밀회 같은 인터뷰’이었을 뿐이고, 고매한 열정의 혁명가를 격려하는 관계였을 뿐, 연인 관계까지 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1938년 10월 19일, 중국 공산당 사회부장 캉성(康生)의 명령으로 처형되었을 때, 그 죄목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문제다. 이는 아들 고영광에 의한 복권(1983년) 신청과 심사 과정에서 밝혀졌는데, ‘반혁명죄와 간첩죄’였다. 즉, 트로츠키(Leon Davidovich Trotsky)파라는 이유와 일본 경찰에서 큰 고초 없이 풀려난 것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간첩죄로 몰렸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복권 심사과정에서 확인되었다. 공산당 문서에서는 "변명하지 않는 미련한 자”란 기록과 일본 기록에는 "결코 변절하지 않을 놈”이란 기록이 나와 결국 무협의로 복권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가 있다. 일본의 이회성 작가나 중국의 고영광 등에 의해 자료가 발굴되면서 해결되었으나, 정작 ‘아리랑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였다. ‘아리랑 문제’란 김산이란 인물 연구와 Song of Arirang이란 텍스트 연구의 근본 문제인데, 결정적으로 과연 김산은 언제, 어떤 계기에 아리랑을 접하고, 가슴으로 인식하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이다. 혁명에 대한 신념만큼이나 돋보이는 아리랑에 대한 명징한 표현들은 단순한 이해 정도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지식인들, 이광수도, 최남선도, 김소운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모든 서평이나 김산을 언급하는 이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에는 "님 웨일스라는 탁월한 기록자가 연안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장지락(김산의 본명)은 그의 다른 무수한 동지들처럼 홍진에 묻혀 사라졌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무수한 동지들’ 중에 이토록 아리랑을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인물은 오직 김산 한 사람뿐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유난히도 높고 깊은 고개를 넘고 넘은 그의 생애에서 알 수 있다. 1917년 개신교 계열 중학교에 진학, 3.1 운동에 참가하다 체포되어 3일간 구류 처분을 계기로 도일하였다. 1922년 상해로 가 김성숙을 만나 마르크스주의를 배우고,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베이징 지부에 입당하고, 공산주의 잡지 ‘혁명’을 간행하고, 1926년 ‘혁명동맹’ 편집을 맡아 선언문을 작성했다. 1927년에는 황푸군관학교 교관을 맡으며 1930년까지 홍콩, 상하이, 베이징 등지에서 활동하다 베이징 경찰에 체포, 일본 영사관으로 넘겨진 뒤 조선에서 심문을 받다 다음해 4월 풀려나 다시 베이징으로 가서 사범학교 교사로 생활했다. 1933년 4월 중국 국민당 경찰에 붙잡혀 다음해 탈출하였다. 이후 잠시 철도 노동자로 일했고, 1936년 7월에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창설하고, 8월에는 조선 혁명가 대표로 선발되었다. 1937년에는 항일 군정 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수학, 일본어, 한국어를 강의하였다. 님웨일즈를 만날 때까지의 이 굴곡진 역정을 김산 말고 산 이가 또 있는가. 분명 이 파란의 과정에서 김산은 아리랑을 접하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계기는 언제, 어디서였을까? 참고: <김산. 그리고 아리랑> www.arirangnara.com
-
김산&님웨일즈 사진
-
김산의 아리랑 행사 연보(2000----)
-
<Song of Ariran ,그리고 김산 > 문헌전
-
'김산의 아리랑' 어떤 장단일까'김산의 아리랑' 어떤 장단일까 매일신문 배포 2013-08-12 07:52:34 | 수정 2013-08-12 07:52:34 15일 수성아트피아 제11회 대구아리랑축제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김산의 아리랑 소리극'이 15일 오후 7시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공연된다. 1930년대 독립운동가이자 중국공산당 간부로 활동했던 김산(본명 장지락)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주제로 한 이번 소리극은 1937년 중국공산당에 투신한 김산이 미국의 신문기자 '님 웨일즈'를 만나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각 지역의 아리랑을 한자리에서 모두 맛볼 수 있다. 김연갑'기미양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아리랑 해설을 들려주며, 이호연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전수조교가 경기아리랑을, 강송대 전남무형문화재 제34호 보유자가 진도아리랑, 김길자 강원무형문화재 제1호 보유자가 정선아리랑, 이춘희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보유자가 경기본조아리랑을 부른다. 또 바리톤 이인철과 이깐딴띠 중창단이 광복군아리랑과 독립군 아리랑을 들려주며,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원 80명이 함께 대구아리랑과 영천아리랑을 비롯해 경상도 아리랑과 독도아리랑을 부른다. 한바탕 흥겹게 편곡된 아리랑도 맛볼 수 있다. 곽동현과 슈퍼밴드는 김산의 옥중아리랑과 새아리랑을 들려주며, 부산'광주 영어방송 풍물패 10명으로 구성된 아리랑밴드는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을 연주한다. 정은하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장은 "영남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아리랑 종을 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지난해 연말 아리랑이 유네스코 세계무형무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이를 더욱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으며, 그 방안으로 아리랑대축제는 물론이고 뮤지컬과 소리극 등 다양한 장르로 아리랑을 좀 더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053)668-1800.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http://news.imaeil.com/NewestAll/2013081207530351467#
-
[아리랑아카데미] 김산 서거 70주년 기념 특강/이원규(김산 평전 저자)
-
[음반] 독립운동가 김산 '아리랑' 노래 복원독립운동가 김산 '아리랑' 노래 복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14&aid=0000033729 항일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이 부른 것으로 기록된 '아리랑' 노래가 복원되었다.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는 28일 "3.1절을 맞아 수감 중에 감방 벽에 손톱으로 가사를 새겼다는 김산의 아리랑을 복원, 음반제작사인 신나라를 통해 음반으로내었다고 말했다.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영화음악에 맞춰 불렀다는 기록에 따라 명창 김영임 씨가 당시 곡조를 찾아 녹음했다. 음반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설명도 함께 수록했다.김산의 생애는 1937년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미국의 신문기자 애드거 스노의 부인 님 웨일스가 3개월 간 20여 회에 걸쳐 나눈 그와의 대화를 소설 '아리랑'으로 출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책에는 김산이 '아리랑'을 불렀다는 기록이 10차례 이상 나온다.김연갑 이사는 "공산당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국에서도 김산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이번 음반을 내게됐다"고 덧붙였다.김산과 님 웨일스의 공저로 출간된 평전 ‘아리랑’과 웨일스의 취재노트에 기록된 김산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발매된 김산의 아리랑지금으로부터 정확히 70년전, 혁명 열정과 항일 의지를 뜨겁게 불사르던 33살의 조선 청년.. 조국 해방을 꿈꾸며 중국 공산당의 ‘불화살’로 대륙을 넘나들던 이 청년이 바로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 ‘아리랑’을 펴내 김산의 혁명열정과 조선의 아리랑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이는 님 웨일즈였다.이번에 발매된 ‘김산의 아리랑’앨범은 김산의 생애와 신념을 민요 아리랑에 초점을 맞춘 음악 앨범이며, 경기명창 김영임씨가 부른 ‘아리랑고개’,‘아리랑연가’,‘아리랑옥중가’등이 수록된 가운데 김산의 신념이 담긴 ‘아리랑, 사형수의 노래’,‘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같은 글도 국문과 영문으로 나란히 낭독돼 그의 진면목을 살피게 한다.김산은 아리랑 고개를 민족사의 고난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리랑을 불렀으며, 이 음반은 한민족 공동체가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로 인식하고 있는 사실 등에 비춰 선각자들이 말한 아리랑의 힘을 현실화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KIM SAN'S ARIRANG01 . 아리랑, 심금을 울려주는 선율02 . 아리랑, 사형수의 노래03 .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04 . 아리랑, 위험한 노래05 . 나는 아리랑고개를 보았다06 . 조선의 혁명은 11월에...07 .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며 모두 울었다08 . 죽음과 패배의 노래09 . 동포의 피눈물로 아로 새긴...10 . 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11 . 활동사진 영화 <아리랑>12 . 김영임 <아리랑연가>12 . -1. 아리랑 연가13 . 김영임 <아리랑 옥중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14&aid=0000033729 www.arirangnara.com
-
백선기 교수 영면식
-
연합뉴스 <67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김산의 영혼>아버지 김산의 훈장증을 보여주는 고영광씨 고영광씨, 아버지 명예회복 과정 소개(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아버지 김산의 영혼이 고국에 돌아왔다. 한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다."17일 오전 종로구 공평동 태화빌딩의 지하회의실에서는 광복60주년을 맞아 얼마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 김산(1905∼1938. 본명 장지락)의 유일한 혈육인 고영광(高永光.69) 씨를 초청해 김산의 복권의미와 생애를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이날 자리는 인터넷에 김산을 기리는 사이트 아리랑나라(www.arirangnara.com)를 운영하는 기미양(45) 씨가 고씨를 초청해 이뤄졌다.고씨는 이날 자신의 아버지의 생애를 다룬 '아리랑'에 나오는 그 가사 그대로 국악인들이 부르는 아리랑 곡조를 들으며 감회에 젖는 듯했다.올해는 조선의 독립운동가 김산이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미국의 여류작가 님 웨일즈가 쓴 김산에 대한 평전 '아리랑'(원제: Song of Ariran)'의 개정판이 최근 출간되고, 그동안 사회주의 계열로 분류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던 김산에게 정부가 최근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등 그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씨는 미리 준비한 아버지 김산의 자세한 활동을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아버지의 독립운동과 생전 활동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김산의 독립운동 활동을 인정한 한국 정부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일본 스파이로 몰려 1938년 중국에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총살된 혁명가 김산.그의 아들 고영광 씨는 김산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얘기를 나이 서른이 넘어 처음 들은 후, 1970년대 후반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 조직부장이었던 후야오방(胡耀邦)에게 직접 편지를 써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탄원했다.당시 그는 아버지 김산을 만났던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나고 "당신의 아버지는 진정으로 멋진 혁명가였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술회했다.결국 1983년 1월, 후야오방과 김산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본의 스파이로 몰려 처형된 김산은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김산의 유품은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씨는 남아 있는 유품은 사진 한 장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이날 질문 중에는 "님 웨일즈와 아버지가 연인 관계였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것도 있었다. 고씨는 이에 대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라고 말한 뒤 "일반적인 동지 관계보다는 가까웠을 수 있겠지만, 상상하기 나름"이라며 님 웨일즈는 조선의 해방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덧붙였다.한편 이날 '아리랑'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연극인 김경원 씨는 김산의 이야기를 소재로 직접 쓴 희곡을 준비해오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남과 북이 함께 김산의 생애 다룬 연극을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또 주최측이 남녀 국악인을 초청, 님 웨일스와 김산의 '아리랑'에 나오는 '아리랑 옥중가'와 '아리랑 연가'를 직접 들어보는 자리도 마련됐다. '아리랑 연가'는 당시 중국에서 님 웨일즈와 김산이 영어가사로 함께 불렀던 노래.고씨를 한국에 초청해 이날 자리를 마련한 기미양 씨는 "흔히 '아리랑'이 님 웨일즈의 단독 저작으로 알려졌는데 '아리랑' 영문 초판본에는 분명히 저자가 '김산ㆍ님 웨일즈'라고 써 있다"며 "김산은 '아리랑'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공동 저자"라고 강조했다.yonglae@yna.co.kr
-
2005년 광복절 , 독립운동가 김산 서훈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