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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 60주년 기념, “아리랑으로 한일관계 재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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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 60주년 기념, “아리랑으로 한일관계 재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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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는 일본이 한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한 것으로써 법적지위, 청구권, 경제협력, 어업문제에 대한 협정 체결이다. 1910년으로부터의 긴 한일관계의 정치적 매듭으로, 전후 격심한 혼란을 겪었지만 한일국교정상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임은 분명하다. 이로부터 60년을 보낸 오늘, 새로운 개념의 진정한 한일관계 정상화를 문화의 저력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문화 저력에 의한 한일관계 재정립, 이 시대적 과제의 단서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에 의탁할 수가 있다. 다음의 다섯 가지에 근거한다. 하나는 아리랑 역사상 첫 활자 기록을 일본인에 의해  존재한다. 바로 1894년(明治27년) 5월 31일자 『郵便報知新聞』(유우빈호우치신문) 기사 <朝鮮의 流行謠 아리랑>이다. 이는 조선 민중의 정서를 청취하기 윈한 목적으로 조선의 유행요 아리랑에 관심을 둔 결과이다. 이는 1896년 미국 선교사 H.B 헐버트의 <Korean vocal music> 보다 2년 앞선 기록이다.

 

둘은 한일회담 과정에서 아리랑은 양국 국가를 대신한 사실이다. 한일회담 최고 난제였던 대일청구권 문제 해결로 한일회담의 실질적인 타결이라는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오히라(金鍾泌大平) 메모’ 서명 순간, 일본 외무성이 아리랑을 연주해 주었다. 한일 국가 연주를 대체한 것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 이는 1993년 11월 6일 일본 수상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가 김해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리랑으로 환영한 것과 같은 것이다.

 

셋은 "앞당긴 통일”로 평가되는 남북단일팀 ‘단가 아리랑’ 합의에 따른 단일팀 출전에 공동 국가 아리랑을 처음으로 시행된 곳이 일본이란 사실이다. 1990년 남북단일팀 결성 후 첫 국제경기가 일본 고베에서 개최된 세계탁구경기였다. 이때 분단 46년만에 처음으로 ‘코리아KOREA’란 이름으로 한팀이 되어 ‘한반도기’를 들고 아리랑 연주 속에 출전하여 세계의 장벽 중국을 꺾고 우승을 하였다. 당연히 수상식에서 우승 메달을 받는 순간 아리랑이 국가(國歌)로 연주되었다. 명실공히 아리랑이 한민족의 노래임을 세계에 입증한 것이다.

 

넷은 1930년대부터 1965년까지 일본에서 유통된 ‘일본아리랑’이 48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일본아리랑’이란 일본에서, 일본 작곡가에 의해 작곡/편곡 되고, 일본 작사가에 의해 작사 되고, 일본 가수가 일본어로 부른 ‘아리랑’ 표제 작품을 말한다. 그런데 이 ‘일본아리랑’이 1931년 ビクター文藝部 編曲, 西條八十八 작사, 小林千代子 노래 ‘アリラン’이 첫 작품이다. 이어 하세가와 이치노(長谷一郞)로 알려진 채규엽이 일본말로 부른 ‘アリランの唄’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널리 유행했는데, 1932년 일본 최고의 작곡가 古賀政男 編曲, 佐藤惣之助 作詞, 淡谷のり子와 長谷川一郎(蔡奎燁)의 노래이다. 이로부터 ‘아리랑 야곡(’アリラン夜曲), ‘아리랑 추억(アリランの思ひ出)’, ‘도도이야쓰 아리랑(都々逸アリラン)’, ‘아리랑 부시(アリラン節), ’아리랑고우타(アリラン小唄), ‘아리랑이야기(アリラン物語) 등 ‘아리랑’ 표제의 총 48종이나 된다.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어느 나라도 이런 노래의 사연을 갖는 경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섯은 아리랑에 얼킨 숙제 하나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그것은 우리 영화 최고의 작품이지만 필름이 없어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영화 아리랑’ 필름이 일본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대동아전쟁기 폭약 제조용으로 관리하고 있던 일본 한국 대만의 영화필름 속에 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이 포함되어 있다”는 아베 요시시게(阿部善重)씨의 생전 주장에 근거한다.

 

아베씨는 군속(軍屬)으로 폭약 제조를 하다 1945년 패전이 되자 3인이 불하(拂下)를 받아 소장하게 되었고, 이 사실을 조총련 영화제작소장 여운각에 의해 남북한에 알려진 것이다. 2005년 사망하여 유품이 일본영상센터에 이관되어 "영화‘아리랑’ 필름이 없음이 확인되었다”고 하지만, 생전 증언에는 "영화‘아리랑’ 필름은 불하를 받은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소장했는데, 고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여지가 있는 것이다.

 

특히 아베씨를 나봉한(나운규 선생 차남) 선생과 세 차레나 만난 바 있는 김연갑 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이 조사한 보고서 ‘아리랑이 보고 싶다’에 의하면 3인이 합동으로 작성한 소장 영화필름 목록은 일본영상센타에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 여지는 있다고 본다. 이 문제는 다시 접근할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의 ‘일본아리랑’과 일본 속의 아리랑을 통해 한국과 일본 간에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써 국가 간의 대화 주제임은 분명하다. 이로서 한일회담 60주년을 앞에 둔 시점에서 일본아리랑 주제 학술모임, 양국 공동 타큐멘타리 제작, 한일 교차 공연 등으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국가무형문화재 아리랑, 그리고 일본아리랑을 새로운 한일관계의 중요한 문화 자산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리랑 정신은 대동 상생에 있다는 사실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제 공동의 실행 위원회 구성으로부터 아리랑을 통한 한일관계 교류의 힘찬 걸음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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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회담 60주년 기념, “아리랑으로 한일관계 재정립하자” _ _ 국악신문.pdf (542.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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